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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을 처음 하기 시작한게 14년전 이었던 것 같다.
체격은 커서 중학교 시절부터 헌혈봉사자 아주머니의 타겟이 되었던 나였지만 당시에는 잘못된 식습관과 과도한 운동량 때문인지 빈혈등 어지럼증이 있어서 헌혈하는 자체가 겁도 나고 쉽게 하지 못했다.
대학시절 술마시러 친구를 기다리다가 군 휴가 나온 녀석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헌혈버스에 동승하여 얼떨결에 처음 헌혈을 하였던 것이 첫경험이라고나 할까.
술마시러 기다렸으니 당연 당일 술마시고 거의 죽을 뻔 했던 경험이 있다.
술이 약하지 않은 나였지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도 집에 오다가 기절할 뻔 했다.
(체질상의 문제라고 하는데 절대 헌혈후 음주하시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런 경험이 몇번 더 있고 나니 정말 헌혈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헌혈에 대해서는 안좋은 기억으로 지내다가 군대시절 진주에 있던 작은 헌혈의 집에서의 경험이 헌혈에 대한 모든 의지와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명 밖에 누울 자리가 없었던 작은 헌혈의 집에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다가 우연찮게 밖에 나온 간호사 손에 이끌려 헌열을 하게 되었고 그 간호사는 성분헌혈이라는 것을 권하며 헌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 해주었다.
처음 1시간 남짓 헌혈을 하는 동안 헌혈에 대해 여러가지 당위성을 친절히 설명하던 그 간호사 덕에 그후 나는 매 2주에 한번 달력에 날짜를 체크해 가며 헌열을 하는 열성 헌혈자가 되었고 , 주말이면 부대에서 가까운 진주에 나가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이었던 나에게 헌혈의 집은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2주간의 지리산 종주훈련까지 마치고 상당히 몸이 힘들었지만 그 주 주말에도 역시 달력에 체크가 되어 있어 헌혈의 집을 갔었고, 헌혈을 하던 중 잠이 들어버린 나를 이불까지 덮어주며 4시간 가량의 수면을 지켜봐 주기도 했다.
너무 꼬박 2주마다 왔었는지 1년 24회 제한에 걸려서 전혈을 하고 2달후에 다시 헌혈을 하기도 했다. 역시 전혈을 하고 나서는 3,4일간 피곤하다.
( 저같은 경우는 성분헌혈이 피곤도 풀리는 경향이 있고 오히려 헌혈하면 게운함까지 드는편인데 전혈을 하면 길면 1주일 내내 피곤할 때도 있다. 사람마다 체질상 다르다고 하니 자신에게 맞는 헌혈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군 제대후에도 근처에 있는 가까운 헌혈의 집이 있으면 당골이 되어 2주마다 달력에 체크하면서 헌혈을 하게 되었고 서울시청 근처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주로 중앙혈액원에 시간을 마쳐 가곤 했다.
중앙혈액원에서는 혈소판 헌혈을 하게 되었는데, 혈장헌혈보다는 시간도 좀 길고 같이 들어오는 약성분이 조금 얼얼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급하게 많이 필요하다는 설명에 혈소판헌혈을 하게 되었다.
역시 중앙혈액원분들도 친절과 항상 가족같은 마음이 느껴지는 분들이었고 식사시간에도 잠시 미루면서 기계 돌려놓고 본인들 볼일을 보시는게 항상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하여 30회를 넘기고 '은장 포상'까지 받게 되니 더없이 헌혈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고, 나도 100회이상 꼭 하겠다는 마음을 다잡고는 했다.
30회를 하고 받은 은장.
< 빈자리가 뱃지 있는 자리이다. 차고 다니다 분실해서 지금은 없다.>
그러던 것이 사무실 옮기고 헌혈을 하려 해도 할 곳이 마땅찮게 되었다.
헌혈을 하러 가려면 1시간가량 이동을 해야 하고 주차문제도 애매하게 되면서 조금씩 헌혈 할 시간내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주5일제가 헌열의 집에도 찾아오면서 시간은 더욱 더 어려웠다.
진주에 있을 당시 간호사는 정해진 인원이 오는 일요일일 경우에는 자신이 쉬는 날임에도 일부러 나와서 돌봐주었던 기억이 있는 나여서 한편 아쉬움을 가졌지만 쉬어야 한다는데 어쩔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헌혈 할 곳을 한동안 찾기도 했다.
그렇게 습관처럼 했던 헌혈을 뛰엄뛰엄 하면서 금방 달성 할것 같던 금장은 몇년이 지나서야 50회를 넘겨 '금장 포상'을 받게 되었다.
헌혈 50회후 받은 금장. 포장이 되어 있어서 뱃지 쓰지도 못해 보관양호.
이것을 받고 난 후 나의 헌혈일지가 끊이게 한 원인된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헌혈할 곳과 시간이 마땅치 않았지만 그래도 동네 헌혈의 집이 생겨 시간이 나면 일부러 차몰고가서 주차비 내면서 헌혈을 했고 그래서 위의 포상도 그곳 헌혈의 집으로 배송을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밥은 나중에 먹고 헌혈할 겸 포장도 받을 겸해서 헌혈의 집에 방문한 순간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점심식사를 한다면서 유리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불조차 다 꺼버린채로 저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간호사들...
문을 두드리자 지금 식사시간이라 헌혈 안한다고 그냥 가세요 하면서 다시 문을 잠그려는고 했다.
순간 일부러 시간내 왔다는 생각에 화도 났고, 밥 먹는다고 불까지 꺼놓을 건 뭐냐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지금까지 모든 헌혈에 관련 된 나의 경험과 배치되는 느낌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냥 물건 온거나 찾으러 간다고 하며 위의 상장만 들고 나왔다.
주차비를 내면서 이곳에 다시는 안온다고 결심을 하며 지금까지 헌혈을 안하고 있다.
정말 사소한 사건이지만 나의 헌혈에 대한 봉사에 대한 믿음에 상처를 받게 한 사건이었다.
그곳 헌혈의 집은 지금 문을 닫은 상태다.
그동안 헌혈의 집이 상당히 많이 문을 닫아 운영하지 않는 곳도 많아져 헌열을 할 곳도 일부러 찾아다녀야 할 정도로 많이 줄었다.
백혈병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아산병원에 일부로 두세번들려 혈소판 헌혈을 해주러 다니던 일도 있던 나에게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지만 만들어주면 헌혈은 헌혈의 집이 멀더라도 하러 가야 할 당위성이 나에게는 있다.
진주 헌혈의 집에서 느낀 간호사의 친절과 헌혈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아직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물론 그 분들도 쉬어야 하고 밥은 먹어야 겠지만 조금만 더 일부러 찾아오는 헌혈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을 해보았다.
혹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걸로 삐졌냐고...
하지만 난 그렇다. ' 헌혈의 집 간호사에게 삐졌다.'
당시 나의 사정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도 시간을 내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삐졌다.
제발 다시 용기 내어 찾아갈 헌혈의 집 등 봉사자,간호사 분들 이런 사소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헌혈의 집' 좀 그만 줄이고 오히려 운영시간과 근무조 투입의 다양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되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세요.
정부도 적십자에게만 맡기지 말고 지자체등에서도 휴게 공간 만들때 '헌혈의 집'을 같이 염두해서 운영한다면 지금보다 많은 헌혈의 집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휴식 공간이었던 헌혈의 집이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휴식 공간이 되어 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추가로...
헌혈도 습관입니다.
저처럼 그 습관을 잃어 버리고 나면 다시 시작하기가 더 어려운거 같습니다.
헌혈은 봉사입니다.
저처럼 사소한 일로 서로의 봉사하는 마음이 의심받는 계기가 없었으면 합니다.
헌혈은 생명입니다.
백혈병치료 잘 끝나서 보내온 애인분의 편지를 지금까지 간직하며 같이 고마워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건강한지 궁금하네요.
체격은 커서 중학교 시절부터 헌혈봉사자 아주머니의 타겟이 되었던 나였지만 당시에는 잘못된 식습관과 과도한 운동량 때문인지 빈혈등 어지럼증이 있어서 헌혈하는 자체가 겁도 나고 쉽게 하지 못했다.
대학시절 술마시러 친구를 기다리다가 군 휴가 나온 녀석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헌혈버스에 동승하여 얼떨결에 처음 헌혈을 하였던 것이 첫경험이라고나 할까.
술마시러 기다렸으니 당연 당일 술마시고 거의 죽을 뻔 했던 경험이 있다.
술이 약하지 않은 나였지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도 집에 오다가 기절할 뻔 했다.
(체질상의 문제라고 하는데 절대 헌혈후 음주하시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런 경험이 몇번 더 있고 나니 정말 헌혈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헌혈에 대해서는 안좋은 기억으로 지내다가 군대시절 진주에 있던 작은 헌혈의 집에서의 경험이 헌혈에 대한 모든 의지와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명 밖에 누울 자리가 없었던 작은 헌혈의 집에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다가 우연찮게 밖에 나온 간호사 손에 이끌려 헌열을 하게 되었고 그 간호사는 성분헌혈이라는 것을 권하며 헌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 해주었다.
처음 1시간 남짓 헌혈을 하는 동안 헌혈에 대해 여러가지 당위성을 친절히 설명하던 그 간호사 덕에 그후 나는 매 2주에 한번 달력에 날짜를 체크해 가며 헌열을 하는 열성 헌혈자가 되었고 , 주말이면 부대에서 가까운 진주에 나가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이었던 나에게 헌혈의 집은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2주간의 지리산 종주훈련까지 마치고 상당히 몸이 힘들었지만 그 주 주말에도 역시 달력에 체크가 되어 있어 헌혈의 집을 갔었고, 헌혈을 하던 중 잠이 들어버린 나를 이불까지 덮어주며 4시간 가량의 수면을 지켜봐 주기도 했다.
너무 꼬박 2주마다 왔었는지 1년 24회 제한에 걸려서 전혈을 하고 2달후에 다시 헌혈을 하기도 했다. 역시 전혈을 하고 나서는 3,4일간 피곤하다.
( 저같은 경우는 성분헌혈이 피곤도 풀리는 경향이 있고 오히려 헌혈하면 게운함까지 드는편인데 전혈을 하면 길면 1주일 내내 피곤할 때도 있다. 사람마다 체질상 다르다고 하니 자신에게 맞는 헌혈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군 제대후에도 근처에 있는 가까운 헌혈의 집이 있으면 당골이 되어 2주마다 달력에 체크하면서 헌혈을 하게 되었고 서울시청 근처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주로 중앙혈액원에 시간을 마쳐 가곤 했다.
중앙혈액원에서는 혈소판 헌혈을 하게 되었는데, 혈장헌혈보다는 시간도 좀 길고 같이 들어오는 약성분이 조금 얼얼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급하게 많이 필요하다는 설명에 혈소판헌혈을 하게 되었다.
역시 중앙혈액원분들도 친절과 항상 가족같은 마음이 느껴지는 분들이었고 식사시간에도 잠시 미루면서 기계 돌려놓고 본인들 볼일을 보시는게 항상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하여 30회를 넘기고 '은장 포상'까지 받게 되니 더없이 헌혈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고, 나도 100회이상 꼭 하겠다는 마음을 다잡고는 했다.
< 빈자리가 뱃지 있는 자리이다. 차고 다니다 분실해서 지금은 없다.>
그러던 것이 사무실 옮기고 헌혈을 하려 해도 할 곳이 마땅찮게 되었다.
헌혈을 하러 가려면 1시간가량 이동을 해야 하고 주차문제도 애매하게 되면서 조금씩 헌혈 할 시간내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주5일제가 헌열의 집에도 찾아오면서 시간은 더욱 더 어려웠다.
진주에 있을 당시 간호사는 정해진 인원이 오는 일요일일 경우에는 자신이 쉬는 날임에도 일부러 나와서 돌봐주었던 기억이 있는 나여서 한편 아쉬움을 가졌지만 쉬어야 한다는데 어쩔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헌혈 할 곳을 한동안 찾기도 했다.
그렇게 습관처럼 했던 헌혈을 뛰엄뛰엄 하면서 금방 달성 할것 같던 금장은 몇년이 지나서야 50회를 넘겨 '금장 포상'을 받게 되었다.
이것을 받고 난 후 나의 헌혈일지가 끊이게 한 원인된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헌혈할 곳과 시간이 마땅치 않았지만 그래도 동네 헌혈의 집이 생겨 시간이 나면 일부러 차몰고가서 주차비 내면서 헌혈을 했고 그래서 위의 포상도 그곳 헌혈의 집으로 배송을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밥은 나중에 먹고 헌혈할 겸 포장도 받을 겸해서 헌혈의 집에 방문한 순간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점심식사를 한다면서 유리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불조차 다 꺼버린채로 저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간호사들...
문을 두드리자 지금 식사시간이라 헌혈 안한다고 그냥 가세요 하면서 다시 문을 잠그려는고 했다.
순간 일부러 시간내 왔다는 생각에 화도 났고, 밥 먹는다고 불까지 꺼놓을 건 뭐냐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지금까지 모든 헌혈에 관련 된 나의 경험과 배치되는 느낌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냥 물건 온거나 찾으러 간다고 하며 위의 상장만 들고 나왔다.
주차비를 내면서 이곳에 다시는 안온다고 결심을 하며 지금까지 헌혈을 안하고 있다.
정말 사소한 사건이지만 나의 헌혈에 대한 봉사에 대한 믿음에 상처를 받게 한 사건이었다.
그곳 헌혈의 집은 지금 문을 닫은 상태다.
그동안 헌혈의 집이 상당히 많이 문을 닫아 운영하지 않는 곳도 많아져 헌열을 할 곳도 일부러 찾아다녀야 할 정도로 많이 줄었다.
백혈병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아산병원에 일부로 두세번들려 혈소판 헌혈을 해주러 다니던 일도 있던 나에게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지만 만들어주면 헌혈은 헌혈의 집이 멀더라도 하러 가야 할 당위성이 나에게는 있다.
진주 헌혈의 집에서 느낀 간호사의 친절과 헌혈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아직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물론 그 분들도 쉬어야 하고 밥은 먹어야 겠지만 조금만 더 일부러 찾아오는 헌혈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을 해보았다.
혹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걸로 삐졌냐고...
하지만 난 그렇다. ' 헌혈의 집 간호사에게 삐졌다.'
당시 나의 사정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도 시간을 내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삐졌다.
제발 다시 용기 내어 찾아갈 헌혈의 집 등 봉사자,간호사 분들 이런 사소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헌혈의 집' 좀 그만 줄이고 오히려 운영시간과 근무조 투입의 다양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되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세요.
정부도 적십자에게만 맡기지 말고 지자체등에서도 휴게 공간 만들때 '헌혈의 집'을 같이 염두해서 운영한다면 지금보다 많은 헌혈의 집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휴식 공간이었던 헌혈의 집이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휴식 공간이 되어 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추가로...
헌혈도 습관입니다.
저처럼 그 습관을 잃어 버리고 나면 다시 시작하기가 더 어려운거 같습니다.
헌혈은 봉사입니다.
저처럼 사소한 일로 서로의 봉사하는 마음이 의심받는 계기가 없었으면 합니다.
헌혈은 생명입니다.
백혈병치료 잘 끝나서 보내온 애인분의 편지를 지금까지 간직하며 같이 고마워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건강한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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